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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다빈치 코드, 번역의 오류

JOHNPARK82 2005. 4. 15. 19:13
소설에 있는 내용을 반드시 사실이라고 믿지는 말자.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의견의 제시일뿐 그것을 가지고 발전시키고, 또 연구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만약 내가 알게된 어떤 신기하고 새로운 사실을 나의 입장으로 정리하려 한다면 그만한 학습과 철저한 배경을 뒷받침 할 수 있어야한다.





#번역의 오류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좀 불편한 구석들이 눈에 띄었다. 예의는 다음 기회에 차리기로 하고,우리말 번역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알만한 예술가 이름이나 지명 따위를 제멋대로 표기하는 건 눈감아 준다 쳐도,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는 그림 ‘매기에 대한 찬사(adoration of Magi)’는 좀 너무했다. Magi는 동방박사라는 뜻. 다 빈치가 피렌체에 있을 때 그렸던 ‘동방박사의 경배’를 이런 식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걸 ‘매기에 대한 찬사’라고 했으니 우리 독자 가운데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좀 곤란한 문제이다. 책방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집이나 관련 서적들이 얼마나 풍부한가. 더군다나 그가 남긴 작품은 고작 열 점 남짓이다. 옮긴이는 “예습,나 그런 거 안 해”,그저 머리에 든 외국어 실력만 믿고 밀어붙인 것 같다.



또 전체 줄거리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자오선 아래 숨긴 ‘쐐기돌’도 그렇다. 끝에 가서 루브르의 뒤집힌 유리 피라미드를 발견하고 주인공이 야,감동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데,옮긴이는 같은 말을 ‘명판’이나 ‘머릿돌’로 바꾸면서 독자들을 놀려먹는다. 이러니 저자가 책 곳곳에 배춧속처럼 쟁여둔 상징기호와 도상의 의미를 읽어낼 재간이 없다. 성배를 뜻하는 ‘상 리엘’도 그렇다. 리엘은 딴에 영어식 발음 비슷하게 흉내를 낸 모양인데, ‘레알’이라고 써야지 맞다. 가령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를 ‘리엘 마드리드’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출판사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다. 글 중간에 뚱딴지 같이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라고 툭 던지면 도대체 우리나라 어떤 희귀한 상식을 갖춘 독자가 그 그림을 머리에 척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종이 값 좀더 쓰더라도 그림이나 몇 점 붙여주었더라면 요즘 보기 드문 출판사라고 칭찬받았을 것이다.



#댄 브라운의 오해와 억측

이 책은 기호학과 도상학의 두 바퀴를 달고 질주한다. 그런데 바퀴가 어설퍼서 보는 사람이 영 불안하다. 가령 ‘암굴의 성모’에서 마리아의 손짓에 대한 설명은 그냥 흘려 들으면 된다. 또 ‘최후의 만찬’에서 나이 어린 요한이 사실은 젖가슴이 나온 여자,곧 막달레나라는 주장은 거의 생떼 수준이다. 요한이 여성적인 용모로,아니 남성의 성징이 드러나지 않는 어린 나이로 등장하는 것은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천 년 전부터 있었던 도상 전통이다. 저자는 내친 김에 막달레나와 예수가 부부 사이였는데,둘 사이에 아이도 낳아서 길렀다고 단언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또 만약에 막달레나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치면,열두 제자 가운데 누군가 한 명이 자리를 비웠어야 하는데,이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유구무언이다. 또 ‘최후의 만찬’에 성배가 없고 유리잔만 여러 개 놓여 있으니 이 그림에서 진짜 성배는 막달레나요,성배는 오목한 여성성을 가리키니 막달레나는 곧 태곳적부터의 대모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존재라고 우겨댄다. 이것도 모르시는 말씀이다. 이미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성배다운 성배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술사의 기초가 없는 독자들은 마치 레오나르도가 역사상 처음으로 ‘최후의 만찬’에 황금 성배를 그리지 않았다고 믿을 것이다.



밀라노에서 4년 넘게 ‘최후의 만찬’과 씨름하면서 까탈스런 수도원장과 사사건건 대립했는데,요한 대신 막달레나를 앉혀둔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수도원장이 맨 먼저 벽화를 철수세미로 박박 긁어 문질렀을 것이다. 잘난 척 하느라 쿰란문서까지 들먹이는 건 그냥 봐주자. 저자는 1519년에 죽은 레오나르도가 20세기에 발견된 문서를 읽고 싶어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싶은 모양이니까.

책머리를 보면 레오나르도가 시온 수도회 소속이었다는 비밀문서가 최근에 발견되었고,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티첼리의 이름도 문서에 올라 있다고 한다. 저자는 한 발 더 나가서 두 화가가 모두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였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저자는 두 가지를 지나쳤다. 서른 해 가까이 비밀단체의 수장 노릇을 했다는 보티첼리의 삶과 작품에서 시온 수도회와 아무런 연관성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첫째다.



둘째는 레오나르도가 보티첼리의 자리를 계승했다고 본 것이다. 두 화가가 철천지 앙숙관계였다는 사실은 레오나르도가 수기 기록으로 남긴 ‘코덱스 바티카누스 1270’에서 지겹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는 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자신의 비밀 일기장에다 선대 그랜드 마스터 보티첼리를 줄기차게 힐난하는 내용을 남겼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노성두 (미술사학자, 서울대 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