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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웹을 돌려받자.(Take back the web)

JOHNPARK82 2005. 8. 4. 19:49
오픈소스로 개발되는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아십니까
누구나 ‘웹’이라는 공공재에 쉽게 접근하는 세상 꿈꾼다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웹을 돌려받자.(Take back the web)"
지난해 말에 등장한 불여우 한 마리가 인터넷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2004년 가을 1.0 버전으로 탄생한 뒤 지금까지 5천만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웹 브라우저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신생아는 관리 주체인 비영리 기관 ‘모질라(Mozilla) 재단’의 지도 아래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의 공동 육아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전세계 프로그래머의 공동육아 작전

지난해 미국 정보기술(IT) 전문지 에서 ‘2004 올해 100대 최고 제품’ 1위로 꼽힌 파이어폭스는 급기야 마이크로소프트(MS) 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을 90%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인터넷 분석기관 넷애플리케이션즈에 따르면 2005년 6월, 익스플로러는 86.6%, 파이어폭스는 8.7%의 점유율을 보였다. 넷스케이프가 몰락한 이래 90% 아래의 수치를 기록한 건 상징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한겨레21>이 창간된 1994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넷스케이프사의 ‘커뮤니케이터’를 사용했다. 뒤늦게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식한 MS는 MSN((Microsoft Network)이라는 별도의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던 기존 전략을 폐기하고 익스플로러를 밀기 시작했지만 별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에, 1997년 자사의 윈도95에 익스플로러를 넣어 배포하기 시작했고, 넷스케이프는 침몰하기 시작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1998년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하면서 오픈소스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이것이 파이어폭스의 씨앗이 된다.

코카콜라사도 원액 제조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듯, 원래 프로그램의 코드는 각 업체의 일급기밀이다. 그러나 오픈소스 프로그램에선 소스를 완전 개방해 누구나 읽고 해석하여 진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유닉스 체제에 대항하며 등장한 대표적인 오픈소스 프로그램 리눅스는 현재 1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 리눅스 시장도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으며, 최근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운영 체제에 국산 리눅스가 후보로 제안돼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파이어폭스는 2004년 또 하나의 오픈소스 실험을 시작했다.


물론 파이어폭스가 완전한 자유방임을 토대로 개발되는 건 아니다. 모질라 재단에 소속된 10여명이 제품 출시 일정 등을 관리하고, 모듈화된 소스별로 책임자들이 지정돼 있다. 한국의 자생적 커뮤니티인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온 4명만이 소스에 접근해서 수정·추가 작업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논리적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서 조금씩 발전해간다. 물론 누구나 파이어폭스의 소스를 열람할 수 있으며, 최근 5개의 버그를 발견한 독일인 개발자는 버그당 500달러의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 ‘오픈’의 의미는 ‘공짜’보다는 ‘개방성’에 더 무게를 준다.

넷스케이프사 인턴으로 10대 시절을 보낸 뒤 현재 스탠퍼드대학에 재학 중인 최초 개발자 블레이크 로스는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께서 내게 전화해 직접 물어볼 필요가 없을 만큼 사용하기 쉬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었다"고 개발 동기를 밝혔다. 인터넷 창을 열기까지 1시간, 다운로드에 1시간 걸리는 걸 할아버지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로스는 “스파이웨어, 웜의 공격에도 시달리지 않는 웹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실 익스플로러는 보편적이기에 해커와 인터넷 광고업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올 초 미국 국토안보부의 컴퓨터 긴급대응팀(CERT)이 익스플로러 대신 다른 브라우저를 쓸 것을 권고할 만큼 스파이웨어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보급률이 저조한 파이어폭스가 안전할 수 있다.

“스파이웨어 같은 적에 더 강하다”

파이어폭스 개발자들은 익스플로러의 결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익스플로러는 코드가 너무 복잡해서 더 쉽게 허점을 노출한다. 윈도 운영 체제에 종속돼 있다는 사실도 큰 문제”라며 독립된 웹브라우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001년 익스플로러 6.0 버전을 내놓은 뒤 큰 개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으른 익스플로러와 달리 24시간 투명하게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파이어폭스가 오류와 바이러스에 더 강하다는 주장이다.

기존 상업 사이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에선 파이어폭스용 검색도구를 내놨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주요 화면을 보는 데도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익스플로러용 비표준 웹언어로 만든 사이트들이 한국에 유독 많아 파이어폭스로 한국 사이트를 서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로그인, 간단한 문서 출력, 인터넷 뱅킹, 신용카드 결제, 사이버 트레이딩, 공공기관의 민원서비스까지 모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연동된 액티브엑스(ActiveX) 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한국에서 파이어폭스 점유율은 1%에 머문다.



△ 지난해 파이어폭스의 자금모집 캠페인이 시작되자 열흘 만에 목표치 10만달러를 웃도는 25만달러가 모였다. 모질라재단은 이를 사용해 <뉴욕타임스>에 1.0 버젼 데뷔광고를 게재했다.

어쩌면 파이어폭스 개발자들은 시장점유율이 1%이든 100%이든 개의치 않을지도 모른다.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의 운영자 윤석찬씨도 “모질라는 권력화를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재단”이라고 말한다. “우린 시장을 지배하는 MS가 파이어폭스를 좇아 기능을 모방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린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오픈소스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방향을 ‘사용자’에 맞춰놓는다.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도 한글 이용자들을 돕고 있다. 파이어폭스 한글판이 나오는 건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 덕분이다. 한글은 2바이트로 구성되는 CJK 문자(중국·일본·한국)이므로 1바이트 영어로 만들어진 파이어폭스를 한글화하는 데는 품이 많이 든다. 한글 모질라 프로젝트에선 최근 비표준화된 국내 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수리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웹은 인류의 발명품이다. 정부기관과 금융기관조차 웹 환경으로 옮겨지는 지금, 웹은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최근 행정자치부는 행정기관 홈페이지를 평가할 때 웹표준과 장애인 웹 접근성 지침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평가 기준에 포함하기로 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공개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웹의 표준화에 대한 고민을

장애인과 노약자같은 이도 개인휴대단말기(PDA)와 같은 비PC 환경에서도 웹에 안정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선 어느 운영 체제나 브라우저에서도 접속이 가능한 표준화된 웹언어가 필요하다. 파이어폭스는 그 부분에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블레이크 로스는 “오픈소스야말로 세계 각지 사람들이 인종, 교육 수준, 문화, 나이를 불문하고 함께 쓰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반MS 정서와 기술 과시 수준을 넘어 웹을 공공재로 인식하려는 파이어폭스의 오픈소스 철학, 단일 브라우저를 쓰는 단일 민족에게도 필요한 때가 오지 않았을까.